나는 가정주부로 빵점이다.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빨래를 해도 깔끔하게 못하고 음식도 이상하게 내가 하면 맛이 없다고 한다(나는 맛있는데 참 이상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가 해준 음식을 좋아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모가 해준 김치찌개, 할머니가 해주신 두부조림을 좋아한다. 내가 열심히 요리책을 보고 하루 종일 요리 한 접시를 만들어 놓으면, 아이들은 한 숟갈 입에 넣고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웃는다. 맛없다고 하면 엄마가 삐질 것 같고 하니 서로 적당한 말을 고르는 눈치다.
그러니 남편의 잔소리는 그칠 날이 없다. 나를 따라다니며 잘못한 걸 지적한다. 내가 봐도 잔소리 들을 만하니 듣기 싫지만 할 말도 별로 없다. 이것저것 흘리고 다니고, 냄비는 거의 매주 태워먹고, 비싼 옷을 세탁기 돌려서 망가뜨리고…….
남편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안 잘리고 회사 잘 다니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잔소리가 정말 듣기 싫은 날은 반항을 하기도 한다. 가끔 시장 봐 온 것 가지고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잔소리하는 남편이 정말 싫다. 왜 남자가 쪼잔 하게 이런 일로 잔소리하나. 남자가 스케일이 커야지……. 불만이 쌓인다.
스님은 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라고 하시는데 정말 원인이 내게 있을까? 이건 태생이 잔소리꾼인 남편 문제다. 이번만은 남편문제다.
하지만 또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번만은 정말 저 사람문제라고 생각될 때 그때 자기를 돌아봐야한다.
며칠이 지나도 남편에 대한 불만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침마다 백팔 배를 하며 내게서 원인을 찾아보지만 결론은 늘 천성이 소심하고 잔소리꾼인 남편 때문이다.
그렇게 보름정도 되는 날 아침, 커튼 밖으로 밝아오는 여명을 바라보며 백팔 배를 하다가 문득 머릿속이 환해졌다.
이거구나, 바로 이거였구나. 너무 기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세월을 많이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육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엄마는 마흔이 훌쩍 넘어 갖게 된 늦둥이인 나를 부끄러워하셨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큰오빠와 나는 부녀지간으로 보일만큼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다보니 막내인 나는 늘 집안일에서 제외되었다. 힘든 농사일도 언니, 오빠들이 다 하고, 나는 늘 좀 덜떨어지고 잘 못하니까 간단한 집안일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집에서는 늘 좀 모자라고 잘 못하는 아이, 그 대신 조금 귀여움 받는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그래도 학교에 가면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으므로 난 학교가 좋았고, 그럴수록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바로 그거였다. 어린 시절 그 까르마가 삼십 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살아온 수십 년을 돌이켜보니 그저 오늘 이 순간이 마치 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다. 내 정신연령은 유년시절 그대로였던 것이다. 난 집안일은 잘 못하는 사람이고 늘 덜 떨어진 사람이고, 잔소리 듣는 대신 조금 귀여움 받고, 누군가 나를 챙겨주는 그런 사람으로 나를 규정짓고 있었구나. 남편의 잔소리의 원인이 바로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 참고 살아준 남편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덜떨어진 아내, 어리버리한 엄마가 아니다. 그 두껍고 무거운 까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나를 돌아보는 기도, 나를 사랑하는 이 시간을 멈출 수가 없다.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끌려 다니면서 살았을 텐데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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