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오늘 바쁘나? "
"왜?"
"안바쁘면 집에 오이라."
"왜? 무슨일 있어?"
"니가 와서 판결을 해도.(해달라)"
"무슨 일인데?"
"나 느아부지랑 안살끼다. 안바쁘면 오이라."
'에고, 또 일이 났군' 싶었다. 친정엄마는 왠만하면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내가 피곤할까봐 그렇다. 그런데 밭일을 하면 도와주려고 전화를 걸었더니 밭일은 할 것 없고 그냥 오라신다. 자세히 묻지 않아도 다 안다. 아버지랑 한판 하셨을 것이다. 일년에 한 두번씩은 꼭 판결을 내리러 가야한다. 우리 부모님은 상습범이시다.
엄마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빨리 오라고 재촉했지만 난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 청소를 다 하고 천천히 갔다. 남동생이 엄마한테 혹시 무슨 일냐고 전화를 했다. 부산에 내려가 있는데 엄마가 오라고 이유도 말하지 않고 전화를 하셨다는 것이다. 판결내리러 내가 간다고 했더니 남동생이 피식 웃으며 "그래. 누나가 잘 다녀와." 한다.
<콩까면서 부부싸움 중인 부모님들>
부모님은 밭에서 수확한 콩을 까는 중이셨다. 나같으면 일을 다 제쳐두고 싸우는데 이 노인네들은 일을 하면서 말싸움을 하신다.
"뭐야? 아침부터"
"내 말 들어보래이. 느아부지가..."
엄마는 아버지가 하신 억지 주장에 대해서 가슴을 처가며 말씀하신다. 요약하면 이모 소개로 땅을 조금 샀는데 손해를 봤다. 근데 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단다. 엄마는 자기 동생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땅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쪼짠하게 군다고 싸우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예전엔 안그러더니 변해도 한참 변했단다.
"내가 황혼이혼한 사람을 보면 이해가 간다. 나도 이젠 못살겠다. 내가 자식들때문에 살았는데 이제 안참을란다. 이혼하소. 통장 다 내놓고."
엄마 옆에는 아버지께 빼앗은 통장 몇 개가 있다.
"아부지. 왜 그랬어? 요즘 돈이 궁해? 왜 지나간 일을 들추고 그래?"
"자식들은 다 엄마 편 아이가."
"그래도 말해봐. 객관적으로 들어볼게"
"내 말은 그러니까..."
쭈뼛거리며 말씀하시는 아버지가 무척 귀엽다. 엄마한테 한번도 이기지 못할 거면서 왜 덤비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간다. 내 엄마는 틀린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엄마의 논리적인 이치를 아버지는 한번도 당해내지를 못하고 끝에 가서는 급 반성의 모드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성이 좀 늦다. 다른 때 같으면 우리가 가기도 전에 이미 엄마한테 잘못을 뉘우치는데 이번에는 내가 가서도 아버지께서 당신 주장을 펴신다.
두 분의 주장을 다 들었지만 엄마 주장이 맞다. 내 개인적으로야 아버지가 설령 틀렸다 해도 아버지 편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하게 엄마가 억울해 하셔서 엄마의 속을 다독거려야 했다. 엄마에게 인천 언니한테 가서 맛난거 먹자고 꼬셨다. 엄마가 언니네 달랑무 갖다준다고 챙기러 간 사이에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가 이해해. 엄마 우울증 있잖아. 그리고 엄마 혈압이라도 올라서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아버지, 엄마 없이 살 수 있어?"
"내 잘못 했구마. 네 엄마한테 내가 반성한다케라. 엄마 맛난거 많이 사주고 이야기 많이 들어주고 엄마 기분 풀어줘라. 내 잘못했다"
"아버지도 어디 가서 기분 풀어. 엄마는 우리가 기분 다 풀려서 보낼게. 그래야 아버지가 편하지"
아버지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드렸다. 엄마는 딸들이랑 수다를 떨면서 풀 수 있는데 아버지는 그렇지가 않다. 그래서 늘 안쓰럽다. 엄마를 모시고 인천에 가면서 반복되는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줬다. 대충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아버지 입장에서 말하기도 했다. 심리 상담을 배우고 있는 나보다 큰언니가 더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엄마에게 이해시켜 가면서 말이다.
우리 아버지는 8살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새엄마가 들어오고 구박이 시작됐는데 아버지도 자식을 돌봐주지 않는 분이셨단다. 형이 위로 한 명 있었는데 먹을 것이 생기면 혼자만 몰래 먹고, 한겨울에 이불도 혼자 똘똘 말고 자는 분이셨단다. 아버지는 술 한잔 걸치시면 배고팠던 어릴적 이야기를 하셨다. 중학교때까지 들었던 아버지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뚝 끊겼다. 왜냐면 아버지께서 술 담배를 동시에 끊으셨기 때문이다. 정말 그 후로 단 한번도 아버지 입에서 어린시절의 고생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엄마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사람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는 버릇이 있단다. 그 말 속에 무슨 다른 뜻이 있을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엄마는 부잣집 딸로 태어났고 외할아버지가 한학자셨다. 큰오빠가 재산을 다 들어먹긴 했어도 평화로운 집에서 살았기에 늘 혼날까봐 긴장하며 살았던 아버지와는 다르다.
난 아버지를 이해한다. 그런 환경에서 정말 내 아버지처럼 바르게 자라기란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친정엄마가 결혼을 막 했을 때 시어머니(새엄마)께서 그러셨단다. "니 신랑이 어릴적에 입이 파래지고 기운이 없어 벌벌 떨어도 쌀 한 줌 몰래 집어먹는 법이 없는 애였다"라고. 아버지는 어릴적 하도 배가 고파서 하늘이 노랗게 보였단다. 그런 상황인데도 몰래 쌀 한 줌 집어 먹지를 않으셨다니 곧은 성품이라고 해야할지 꽉 막힌 성격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엄마. 그래도 아버지가 책임감 있고, 성실하고 그렇잖아. 우리 법당에 말 들어보면 아버지가 술주정에다 폭력있는 분도 많더라"
"뭐 그렇긴 하지. 느아부지가 참 불쌍하대이. 진짜 복이 없어도 그리 없을 수 있나 싶대이"
"복이 왜 없어? 엄마를 만난 게 큰 복이지. 그리고 우리 자식들이 다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도 복이지"
엄마는 소래포구에서 꽃게를 산다. 아버지가 게장을 좋아하신다는 거다. 웃음이 난다. 싸울 때는 언제고^^
엄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내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다. 아침 11시에 출발해서 밤 10시에 들어갔다. 같이 간 딸이 할아버지 할머니 싸움이 무척 재밌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엄마, 엄마네 집 여자들이 다 센 것 같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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