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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자 0형 아줌마의 사는 이야기

나는 너의 인생에 보조로 태어나지 않았다.

'오체투지'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경혜라는 뇌성마비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매일 천배씩 절해서 거의 뇌성마비를 낫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 책에는 성철스님과의 인연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그닥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한 도반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제게 빌려줬습니다. 이 작가는 100일간 매일 만배씩도 두번씩이나 했습니다.

 

천배도 아니고, 삼천배도 아니고, 하루에 만배. 스님도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매일 만배씩 100일기도. 중간에 너무 힘들어 자살까지 기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닥 공감이 안갔는데 2주전 토요일 천배, 일요일 천배, 지난주 토요일 500배, 일요일 500배를 하면서 고작 이 정도에도 죽을 맛인데 하루에 만배라니, 죽고 싶었겠다 이해됐습니다. 물론 안하면 되지,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별 감동이 없이 읽다가 그 작가의 엄마가 한 말에 멈칫했습니다.

 

"네가 나의 인생에 보조로 태어나지 않았고, 나 역시 니 인생에 보조로 태어나지 않았다"

 

                                                                                <오체투지 중에서>

 

결국 각자는 다 주인공이라는 말입니다. 다 주인공. 남들이 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인생이지만 그들은 모두 주인공입니다. 내가 나를 별 볼일 없이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실제 내 인생을 살아가는 타인이 아닌 바로 나입니다. 이미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라는 말을 식상하게 많이 들었는데도 그 엄마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은 것은 왜일까요.

 

장애인을 둔, 뇌성마비인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땡전한닢 없이 딸 둘을 데리고 살면서 얼마나 지쳤을까. 그런 엄마가 딸에게 '우리 서로 보조인 인생이 아닌 각자의 주인공'이라고 선언한 겁니다. 그것은 뇌성마비 딸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심어줬을 겁니다. 자칫하면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자책하기 쉽고 장애자식을 마음에서는 물론 생활에서도 독립시키지 못하는데  이 엄마는 전혀 반대였습니다. 만배를 하다 자살을 기도한 걸 알고 아주 냉정하게 죽으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보다 못한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냉정한 태도가 자살을 기도한 딸을 오히려 살렸습니다. 살아야겠다고 꼭 살아야겠다고 생명을 지키게 했습니다. 지금 그 작가는 장애를 가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시어머님이 쓰러지셔서 병석에 누웠던 12년전 '주인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불법을 몰랐습니다. 다만 시어머님께서 평생을 고생하시다 결국 병석에 누워 똥오줌을 받아내실 때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던 주인공은, 잘난 사람이라고 주목받는 주인공은 내 어머니처럼 똥오줌 받아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드라마에서는 죽음까지도 간지나게 죽는데 왜 내 주변은 그런 간지나는 주인공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결론이었습니다. 만약 주인공이었다면 결코 내 어머니가 저렇게 쓰러지지도 않고, 내가 고통을 겪더라도 빨리 해결되는 영웅이어야 하는데 현실이 안그랬으니까요.

 

그 후, 불법을 만나서 참된 '주인공'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헌데 말이죠. 그렇게 알면서도 자꾸 예전의 '주인공'의 개념이 저를 흔들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란 말은 맞기도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라 현실감은 없구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독립된 객체, 결코 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너가 될 수 없다' 참 똑똑한 엄마입니다. 자식에게 독립하게 했습니다. 그것도 장애를 가진 자식에게. 나같은 성격에는 평생 받들고 걱정하며 살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제가 자식에 대한 집착이 좀 많은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부모를 보니 집착이 심한지 않습니다. 또 요즘들어 제가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들면 '저 아이 인생은 따로 있다'라고 돌이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간섭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나도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대안교육까지 받은 아이들이 나보다 더 어련히 자기 길을 가겠나 싶어 그냥 둡니다. 

 

내가 주인공인지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좀 투자해야 합니다. 요즘 짬내서 산에 가보면 주인공을 반기는 푸른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얼마전에 찍었던 가을 느낌이 길이 완연한 봄을 맞았습니다. 이 숲을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마음이 주인공입니다.

 

 

 

 

                                                                                 <우면산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