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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자 0형 아줌마의 사는 이야기/세상이 어째 이런겨?

아버지의 기부

 

 

"엄마는 절대 기부해달라고 오는 사람들 만나면 단돈 천원이라도 주고 가. 내가 인사동에서 거리모금할 때 엄마 나이쯤 되는 사람들이 외면하고 가면 보기 나쁘더라. 죽을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보시를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더라"

"그런 사람 다 가짜 아이가?"

 

"띠를 다 두르고 하는데 왜 가짜야? 그리고 가짜로 하는 사람이 아이까지 데불고 사기를 치겠어?"

"난 다 가짜로 알아서 안냈는데 다음부터는 낼게"

 

"횡단보다 앞에서 아무 띠도 없이 모금함 들고 다니는 아줌마들은 가짜일 수 있는데 우리는 아니냐"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은 주는데"

 

"왜 그런 사람을 줘? 그런 사람은 가짜가 많은데"

"그 나이에 오죽 살기 힘들면 사기를 치겠나, 싶어서 내는 눈감고 준다"

 

친정 집에 가서 엄마와 보시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나이도 있으신데 많이 베풀고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을 꺼냈습니다. 그동안은 살기 어려워 못했다지만 이제는 해야할 나이가 되셨다고 보여졌습니다.

 

"난 매달 기부하는 거 하면 좋겠더라. 단 돈 만원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은데 그런건 우찌 하노?"

"엄마, 그거 우리 정토회에서 하면 돼. 내가 신청해줄게"

 

"그래. 그거 해주라. 꾸준히 하는게 중요하지. 어쩌나 내는 것보다"

 

친정 엄마가 매달 만원씩이라도 꾸준히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텔레비젼을 보시던 친정 아버지께서 우리의 대화를 들으시고 나오셨습니다.

 

"만원이 뭐꼬? 최하 이만원은 해야지"

"아이고, 그냥 만원만 꾸준히 하소. 우리 형편에 만원이면 됐고마."

 

"만원은 무슨? 영숙아 이만원 하그라"

"한두해 하고 말끼요? 계속 할낀데. 형편 것 하소. 우리도 아-들(자식들)이 주는 돈 가지고 삼수로(살면서) 욕심내면 되요? 만약 아-들이 안주면 그때는 어쩔끼요?"

 

제가 중간에 끼어들었습니다. 

 

"엄마, 걱정마. 난 엄마 아부지 용돈 꼭 줄거야. 자동이체로 매달 신청해놨어. 그냥 보내니까 까먹더라^^"

 

엄마는 화장실로 가시면서 눈을 찡긋 하시며 소리없이 '만원만 해라. 아버지 말 듣지 말고' 하시고는 아버지께는 "맘대로 하소. 당신이 통장 관리하지, 내가 하는거 아닌게" 하십니다.

 

또 아버지는 화장실 간 엄마의 눈을 피해 제게 "내 말대로 하그라. 엄마 말 듣지 말고. 사람이 죽는데 만원이 머꼬?"

 

"알았어. 나야 뭐, 많이 하는 사람 편이지"

 

다음날 아침 일찍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생전가야 제게 전화를 안하시는데 말이죠.

 

"영숙아. 굶어죽는 사람 돕는거 5만원씩 매달 자동이체 해둬"

"헐 5만원이나? 아부지, 엄마한테 안 혼나겠어요?"

"느그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지. 내 용돈을 덜 쓰면 된다. 5만원 해둬. 굶어죽는데..."

 

친정아버지는 유독 제가 한 말 중에 굶는다는 말에 걸리셨나 봅니다. 아버지가 굶었던 어린 시절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아버지께서 후원 신청을 해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바빠서 못했는데 돈이 안빠져 나갔다고 잘못됐는지 알아보라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같으면 한달이라도 늦게 빠져 나가면 돈이 굳겠구만, 생각할텐데 아버지는 하루라도 빨리 후원해서 굶주리는 생명을 살리고 싶어하십니다. 훌륭한 아부지^^

 

<아버지의 후원>

 

드디어 오늘 신청을 했습니다. 빨리 해드리지 못한 것이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아버지의 바램처럼 생명을 살렸어야 하는데... 제가 배고픈 아이의 마음을 헤아림이 적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용돈을 줄이시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요즘 후원금을 줄이고 제 용돈을 좀더 늘릴 생각을 사실 조금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 딸이 아닌가 봅니다. 엄마 딸인가^^

 

내 아버지같은 아버지를 두어서 참 고맙습니다.